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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 연 게놈 연구의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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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열(ghimsa@k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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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에(Haemophilus influenzae)라는 세균 게놈(genome)의 염기배열이 완전하게 해명되었다는 보고는 당시에는 과학계 내부에서 조차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엄청난 파장을 가지게 된 그 '게놈’이라는 단어가 일반인의 입에까지 오르내리게 되기까지는 그리 긴 세월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른바 불을 조작하는 시대의 마지막 단계인 산업시대가 매장자원의 고갈과 환경 파괴라는 문제점을 안은 채 그 500여 년의 수명을 다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20 세기말이었다. 한때 인간에게 적지 않은 풍요로움을 선사했던 산업시대가 역사 진행의 바통을 바이오테크놀러지 시대에 넘겨줄 때에 게놈이라는 주자가 끼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른바 생명공학 시대는 생명과학과 컴퓨터공학이 결합하여 주도하는 세계라 할 수 있다. 인터넷, 생명복제와 더불어 21 세기의 벽두를 희망적으로 장식하는 3가지 단어 중 한가지가 된 게놈이라는 분야의 연구가 미생물을 대상으로 하여 시작되었으며 아직 대부분 미생물의 유전 정보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전세계적으로 2000년 9월 현재 49개의 생명체에 대한 염기배열 결정이 완료되어 있는데, 그 중 다세포 생물로서는 선충(Caenorhabditis elegans)과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를 뺀 나머지가 모두 우리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생물의 범주에 속해 있다. 미생물이 게놈 연구의 새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셈이다. 이제 그 게놈 연구가 열어 젖힌 특별한 세상을 한번 여행해 보기로 하자.
게놈은 무엇인가? '게놈' 혹은 '유전체'라는 용어는 전세계적으로 불과 5년 전만 해도 대중들에게 낯선 단어였다. 시초에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라는 두 단어를 합성한 게놈이라는 용어는 1920년대 독일 식물학자 빙클러에 의하여 제안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진핵생물에서는 여러 쌍의 염색체 DNA와 세포질의 엽록체 혹은 미토콘드리아 DNA를 합친 것이다. 세균과 같은 원핵생물은 세포 당 한 가닥씩 존재하는 염색체 DNA와 염색체 외 유전정보를 담은 플라스미드 DNA를 총칭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96년 10월 국회에서 유전체 연구지원모임이 창립되었을 때 '유전체'로 부르기로 합의한 바 있는데, 2000년 5월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에서 '게놈'으로 부르기로 결정하게 되어 용어 사용에 다소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어쨌든 생물학사전에서는 게놈 혹은 유전체를 '배우자에 함유되는 염색체 또는 유전자의 전체를 호칭하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그것을 연구하는 학문의 분야를 유전체학(Genomics) 혹은 유전체 생물학(Genome Biology)이라고 부르고 있다.
생명 현상과 DNA 이 게놈 생물학의 분야는 분명히 생명체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그 물질은 화학적 물질과 다르지 않아서 분자적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생화학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에 대한 과학자들의 다양한 입장이 있지만, 생물의 자기복제 능력은 누구나 포함하는 특성이다. 그 생명체의 정확한 자기복제는 유전적 정보인 DNA 사슬의 염기배열에 바탕을 두고 있다. DNA는 생체분자이지만, 무생물체의 행동 양상을 보이며 물리학적·화학적 법칙에 충실할 뿐이다. 바로 생물의 게놈을 이루는 DNA 시퀀스는 생명현상의 중심에 있으면서 그 자체가 생명성을 가지지는 않는다. 게놈생물학자는 생명현상을 화학적 언어로 해석하며, 생명체가 가지는 DNA 염기배열을 유전적 정보(genetic information)로 파악한다. 바로 그 정보(information)라는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존재를 해석한 바의 질료(matter)로 내용이 채워지는 형식에 해당하는 형상(form)과 동일한 계통이라 할 수 있다. 개별적 본질간의 분화는 대부분 형상의 특성 탓이며, 원인의 연구는 형상을 이루는 질료(informing matter)의 특별한 과정을 묻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앙뜨완느 단쉰(Antoine Danchin) 박사는 정보를 형상에 의하여 주어지는 특이성일 뿐 아니라 절대적인 인과성으로 파악하였다. DNA 시퀀스는 형상의 지극한 절대적 개념과 관련되는 것이다. 게놈 생물학은 유전적 정보의 다양한 이론을 생명체, 특별히 DNA 시퀀스가 대표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한 생물의 전체 게놈의 정보를 파악하는 일은 인간이 생명현상을 해석해 보기 위하여 반드시 건너야 할 다리이지만, 다리 건너편에 앞으로 펼쳐져서 연구해야 할 엄청나게 큰 분야의 시작이며 기초 자료일 뿐이다.
염기배열의 비밀은 어떻게 밝힐까? 게놈의 연구는 그 크기를 재든지, 제한효소 지도를 작성하던가, 유전자 지도를 만들던가 하는 따위의 다양한 연구 방법이 있지만, 역시 그 전체 염기서열을 밝히는 작업이 본격적인 연구를 위하여 반드시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한 생물의 전 염기배열 정보를 확보하는 것은 커다란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에 비유할 수 있겠다. 실제로 염기배열의 해명이라는 기초공사는 정확성과 더불어 신속성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게놈 연구 분야의 태동을 위해서는 그 두 가지 성질을 충족해 주는 기술의 발전이 선결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항상 어떤 새로운 과학 분야의 진보에는 그 받쳐주는 첨단 기술이 있어 왔다. 그렇다면 게놈 연구에는 어떤 기술의 공헌이 있었던가? 많은 사람들이 1986년에 있었던 자동적 형광 염기배열 결정법의 발견이 1995년 첫 게놈의 염기배열 해독을 가능하게 한 가장 중요한 기술 중의 한 가지로 꼽고 있다. 염기배열 결정법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지만, 형광을 사용하여 자동화한 기술은 게놈 규모의 연구와 같은 대량의 작업을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해 준 것이다. 게놈 맵핑(mapping)의 연구가 게놈 시퀀싱(sequencing)으로 이행되도록 한 데에는 자동화 염기배열 결정법의 도입이 그야말로 결정적이었던 셈이다. 현재 주로 사용하는 것은 2가지 다른 기계의 유형이다. 즉, 1줄, 4염색 시스템(one-lane, four-dye systems)을 적용하는 분석 기종인 Applied Biosystems(ABI) 373A 혹은 ABI 377 등이 있고, 4줄, 1염색 혹은 4줄, 2염색 시스템(four-lane, one-dye or four-lane, two-dye systems)을 적용하는 Pharmacia ALF, LoCor 4000, LiCor 4200 등이 있다. 최근에는 모세관 전기영동 시퀀싱 기계(capillary electrophoresis sequencing machine)가 적용되기 시작하여 더욱 신속한 시스템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어떤 방식을 적용하든, 게놈 시퀀싱 과제는 대체로 4단계로 이뤄진다. 먼저 일차적인 염기배열 결정의 단계이다. 각 DNA 단편의 염기서열을 읽고, 그것을 서로 조립하는 것을 포함한다. 두 번째는 연결 단계이다. 첫 단계에서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조립된 사슬(contig) 간에 발생한 빈틈을 연결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다듬기 단계이다. 데이터 분석 도중에 한 가닥 DNA의 염기배열을 읽었을 때 불확실하거나 오류가 발생하면 다른 상보적인 가닥을 읽어 교정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종결된 염기배열을 분석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여러 가지 각도로 전체 데이터를 분석하고 각 유전자의 이름을 붙이고, 최종적으로 분석된 내용을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는 것을 포함한다.
3가지 방식의 전략 어떤 방식의 염기배열 결정법을 사용하든, 전체 게놈에 접근하는 전략은 이제까지 대체로 3가지 정도로 알려져 있다. 바로 전 게놈 무작위 염기배열 결정법(total-genome shot-gun sequencing), 프라이머 이동 염기배열 결정법(primer walking) 혹은 그 2가지 방법의 혼용이다. 전 게놈 무작위 염기배열 결정법은 시초에 바이러스의 게놈을 해석하기 위하여 적용되었던 방법으로서 미생물 게놈의 연구에도 적용되었다. 실제로는 전체 게놈을 상대로 하기보다는, 주로 cosmid, BAC 등과 같은 백터 속에 제작된 목표 DNA의 거대 단편을 시퀀스 하는 기술이다. 먼저 게놈 DNA를 무작위로 잘라 작은 단편으로 만들어 pUC, M13 등과 같은 백터 속으로 크로닝 하여 1 - 5 kb의 크기의 DNA 단편이 삽입되도록 한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6 - 10배의 게놈을 시퀀스 하게 되지만, 연구지원비가 충분하고 많은 설비가 갖춰진 곳이라면 신속한 결과를 내기 위하여 도입할 만하다. 이 방법은 전체적인 게놈의 구조를 마지막 작업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파악이 가능한데, 많은 수의 단편간 빈 틈새(gap)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방식 적용의 가장 큰 문제는 게놈 DNA의 특정 단편들이 마지막까지 대장균에서 클로닝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큰 문제는 게놈 상에 다수로 존재하는 반복적인 염기서열을 해결하기 곤란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방법은 2 Mb 이하의 매우 작은 크기의 게놈을 가져서 비교적 반복 서열이 적은 경우에 주로 사용한다. 프라이머 이동 염기배열 결정법은 시초에 효모 염기배열 결정 과제에 적용되었다. 이 방법은 질서정연하게 제작된 클론의 집합체(an ordered library of clones)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cosmid library와 같은 큰 크기의 클론과 그 겹치기 클론을 제작하거나, 혹은 그 큰 클론을 제한효소로써 절단한 비교적 작은 크기의 클론으로 제작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대체로 6개 염기를 인식하는 제한효소를 사용하며 2가지 서로 다른 종류를 써서 전체 게놈에서 빈 틈새가 생기지 않도록 2세트를 정교하게 제작한다. 이 방법의 적용은 프라이머의 제작이 값싸고 용이한 곳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시퀀싱에 사용하는 각 클론의 프라이머는 양 말단에서 제작한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평균적으로 중복 작업은 2.4배정도 이뤄지므로 전 게놈 무작위 염기배열 결정법에 비교한다면 아주 경제적으로 이점이 있는 방식이다. 다른 이점은 과제가 시작된 바로 직후에도 염기배열의 결정이 이뤄지고 그 게놈 규모의 구조가 쉽게 파악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문제점은 프라이머 디자인과 합성 시간이 끼어 듦으로써 연속적인 시퀀싱 작업에 지체가 있다는 것이며, 게놈 상에서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다수의 반복적인 염기배열이 존재할 시 동일한 종류의 프라이머로부터 서로 다른 위치의 염기배열이 동시에 읽혀지는 혼란(double sequence)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2가지 방법의 혼용은, 만약 앞에서 서술한 한 가지 방식만 적용할 경우 발생하는 고비용이나 시간 낭비의 문제점을 극복해 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현재 게놈 염기배열의 결정을 완성하거나 시도하고 있는 대부분의 연구 그룹은 이 혼용법을 적용하고 있다. 대체로 과제 착수의 초창기에는 커다란 게놈 단편을 질서정연하게 library로 제작하고, 나중에 단편간의 빈 틈새를 메우는 데는 프라이머 이동 염기배열 결정법을 적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Haemophilus influenzae나 Mycoplasma genitalium처럼 연구 대상 미생물의 게놈의 크기가 2 Mb 이하이면 전체 게놈의 지도를 필요로 하지 않고, 대장균이나 고초균 과제와 같이 2Mb 이상이면 시초 게놈 지도의 작성이 필요하다. 어쨌든 이 혼용법을 지혜롭게 적용하면 전체 게놈을 중복으로 읽는 크기를 줄여 주고, 신속한 작업 속도를 보장해 준다. 과연 어떤 방법이 미생물 게놈을 연구하기 위하여 가장 효율적일까? 솔직히 어떤 조건에서나 최상인 한 가지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구 대상 미생물의 게놈 크기, 연구에 참여하는 그룹이나 연구원의 숫자, 관련 연구의 장·단기 목표, 지원 연구비나 시설·장비의 규모 등에 따라 적절한 연구 방법이 설정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첫 해독 생명체: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에 1980년대 중반 이후 생명체의 유전체 연구 시도에 대하여 상당한 기간 동안 과학계에서 논란이 빚어졌다. 얻어질 단순한 결과에 비추어 게놈 프로젝트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투자된다는 회의론적 시각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한 기념비적 연구가 그런 회의론을 잠재웠다. 1995년 미국 유전체연구소(The Institute for Genomic Research)의 크레이그 벤터(Craig Venter)와 그 동료들이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에(H. influenzae)라는 세균의 전체 염기서열을 완전히 해독했던 것이다. 미국 유전체연구소 연구팀의 분석 결과, H. influenzae의 게놈은 1,830,137 bp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체 게놈에 접근하는 방식은 처음에 전 게놈 무작위 염기배열 결정법을 사용하였고, 빈틈을 메우는 데는 프라이머 이동 염기배열 결정법을 도입하여 마무리하였다. 비록 6배수의 염기배열을 결정하였지만, 결정 속도의 신속함은 압도적이었다. H. influenzae 게놈에서 알려진 유전자를 포함한 예상된 코딩 부위는 1,743개였고, 그 중 데이터베이스의 어떤 것과도 유사성을 보이지 않아서 그 기능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389개였다. 실제로 유럽의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효모(Saccharomyces cerevisiae)와 고초균(Bacillus subtilis)에서 유전체에 대한 국제적인 협력연구로부터 유전체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80년대 말이지만, 그 첫 완결은 미국 유전체연구소에 의하여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에의 깃발이 역사 속의 첫 기록으로 꽂혔다. 엄청난 양의 염기서열의 결정은 역시 질적인 창의성과 더불어 거대 연구비의 지원과 작업 진행의 신속함이 필요로 했던 분야여서 미국을 어느 나라도 앞지르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이 연구 이전의 다른 게놈 연구 과제들은 막대한 연구비 소요를 분산하기 위해 염색체 가닥을 여러 개의 단편으로 절단하여 다수의 연합 연구팀들에게 나눠서 염기배열을 결정해 오고 있었다. 반면에 이 첫 발표의 연구를 단독으로 주도했던 미국 유전체연구소는 막대한 연구비와 기계화된 DNA 추출 시스템 및 엄청난 자동분석장비를 바탕으로 하여 염색체 가닥을 무작위로 자른 몇 배수 단편의 염기서열을 결정하는 방법(total-genome shot-gun sequencing method)을 사용하였다. 비록 이 연구소가 채택했던 방식이 고비용의 대가를 치르긴 하였어도 게놈의 염기배열 결정 속도에는 다른 기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신속함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이후의 다른 연구팀의 연구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음은 물론이다.
미국 유전체연구소와 셀레라 제노믹스 1995년에 게놈이라는 단어와 함께 불쑥 나타나 대중들에게 생소함을 더했던 미국 유전체연구소는 메릴랜드주의 롹빌(Rockville)에 위치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에 설립된 이 비영리 연구소는 바이러스, 세균, 아케아, 및 식물·동물과 같은 다양한 생명체의 게놈과 유전자 산물의 구조, 기능, 및 그 비교 분석에 주된 관심을 쏟고 있다. 8만 평방 피트가 넘는 연구실과 12 에이커의 사무실 공간을 가지고,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 분야의 현대적 시설을 갖춘 이 연구소는 불과 30여명의 정예 연구원을 중심으로 유전체 연구 분야에서 어느 연구 그룹도 무시할 수 없는 대단한 업적을 이미 기록하고 있다.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에 염기배열 결정이 발표된 후 첫 5년 동안 그 염기배열의 결정과 업적의 출간이 완성된 28개 생명체 중 11개의 유전체 연구가 이 연구소의 단독 주관 작품임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지금도 여러 개 생물의 게놈 연구를 동시 진행하고 있는 미국 유전체연구소에는 현재 프레이저(Claire M. Fraser) 박사가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게놈 연구 분야의 30여명의 박사급 연구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그 동안 쌓은 업적과 기술을 바탕으로 하여, DNA 칩 제작에 사용되는 micro-arraying과 같은 새로운 기술 분야의 도전, 게놈 연구와 관련된 자동화된 로봇 시스템의 개발, 최첨단 염기배열 분석기의 도입 등에 큰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결국 미국 유전체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생명과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셈이다. 초창기 이 연구소의 소장으로서 전 세계 게놈 연구에 적지 않은 충격과 영향력을 행사했던 크레이그 벤터는 1998년 셀레라 제노믹스(Celera Genomics)라는 게놈연구 벤처 회사를 창업하여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셀레라는 퍼킨-엘머사가 제작한 자동염기배열분석기 ABI 3700을 300대나 가동하며 게놈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우리 나라 게놈 연구의 현황 게놈 염기배열의 해독은 미국의 유전체연구소처럼 하나의 큰 연구팀이 수행하기도 하고, 여러 연구팀의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공동연구에 의하여 이뤄지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엄청난 규모의 연구비 지원이 집중되어야 하므로 한국의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편이다. 후자의 경우, 그 동안 우리 나라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실들이 개별적인 연구에 익숙해져 온 탓에 공동적 연구를 위한 협력에 어려움을 가짐은 마찬가지이다. 국제협력과제에서 고초균 유전체 국제 공동연구에 한국의 한 팀이 참여한 경험이 고작일 정도이다. 2000년부터 과학기술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21세기 프론티어 사업에서 게놈연구에 연구비 지원을 집중하기로 한 것은 국제적인 연구 추세에 비추어 다소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주로 진핵생물 게놈의 연구나 유전자 기능연구 분야에 치중되어 기초적 게놈 연구의 근간을 이루는 미생물 게놈 연구 분야가 소홀히 다뤄지고 있음도 다소 아쉬운 일이다. 국내에서도 1998년 말부터 소수의 공동연구팀이 헬리코박터 파이로리(Helicobacter pylori)와 자이모모나스 모빌리스(Zymomonas mobilis)라는 세균의 유전체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 8월말 마크로젠이라는 생명공학 벤처기업이 연구 착수 6개월만에 자이모모나스의 전체 염기서열 중 98.9%의 분석을 끝냈다고 발표하였다. 그것은 대단히 가슴 설레고 반가운 일이다. 실제적으로 염기배열 결정 마지막 1%의 완성에 수개월-수년이 걸리고, 그 결과를 완전히 분석하여 논문으로 발표하기까지 기간을 감안한다면, '한국, 세계 8번째 게놈 국가에'라는 신문 기사는 다소 성급한 면이 있지만, 어찌하였든 그것은 크게 경하할 일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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